규정된 틀 넘어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음악 들려주고 싶어
‘시티팝’이라는 새는 어느새 우리 곁으로 날아와 텃새처럼 됐다. 1970, 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 시절에 융성한 팝이라는 교조적 정의는 ‘도시의 팝’이라는 느슨한 해석 앞에 흐물흐물해졌고 도쿄나 오사카와 무관하게 전철이 한강 철교 위를 지날 때 우리는 아련해진 눈으로 시티팝을 듣고 있는 것이다. 2017년, 필자가 ‘시티팝이 돌아왔다’란 제목의 기사로 일각에서 부는 시티팝 리바이벌의 이상 열기를 다뤘을 때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아무래도 좋다. 2014년 결성. 한때 거친 개러지 록을 구사하던 중고 신인 밴드, ‘나상현씨밴드’는 시티팝에 마음이 가는 청자들에게 날아온 반가운 소식이다. 송라이팅을 맡은 ‘나상현 씨’가 뽑아내는 국숫발처럼 친근한 멜로디의 감각, 밴드의 털털한 듯 치밀한 편곡과 연주는 그 어떤 철교 위든 둔치 길가에든 제법 잘 어울린다. 오늘도 도시의 황혼은 파랑과 검정 사이에 분홍을 놓아둘 것이며 스르륵 네온사인은 눈을 뜰 것이다. 그리고 음악이 울릴 것이다. 여기 나상현씨밴드가 있다.
인터뷰: 임희윤|사진: 김태훈
Q. 나상현씨밴드라는 이름이 어딘지 매우 고풍스럽습니다. 그냥 '나상현' 또는 밴드 'XXXX' 식으로 개명하는 것은 고민해본 적 없나요. '나상현씨밴드'라는 팀명에서 나상현씨밴드 멤버들은 어떤 인상을 받나요. 또 듣는 분들은 어떤 인상을 받으셨으면 하나요?
상현: 처음 밴드 이름을 지을 때 제 이름을 담기가 너무 싫었어요. 괜히 독재자일 것 같고 자의식 과잉일 것 같고… 그러다 ‘나상현씨’ 라는 새로운 캐릭터성을 가진 자아를 만들어서 일종의 콘셉트 밴드로 기획을 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그냥 독재자 밴드가 되어버렸(?) 네요. 듣는 분들에게 제가 스스로 도취되어 보이지 않았으면 좋습니다. 아직까지도 팀 이름에 조금은 민망해하며 살아가는 나상현입니다.
승렬: 이미 팀 이름이 팀과 잘 융합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저희가 애초에 멋을 뽐내는 녀석들이 아니라서 어울리지 않게 멋 부리는 이름이 아니라 좋은 것 같아요. 다만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씨’가 저희 팀 이름의 핵심인데, 종종 ‘나상현 밴드’, ‘나상현밴드’, ‘나밴’ 등 잘못 표기될 때는 친구들이 말하는 자아도취 밴드가 된 느낌을 가끔 받습니다.
현웅: 저는 정직하게 ‘나상현씨가 소속되어 있는 밴드’라고 느끼는데, 활동 초기에 클럽 사장님으로부터 ”씨는 존칭인데 왜 스스로에게 존칭을 붙이느냐”라는 잔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놀라기는 했지만, 저희가 이름을 정할 때 꽤 오랫동안 얘기하고 정한 이름이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Q. 올 초엔 015B와 콜래버레이션을 했어요. 소감이 어땠나요. 나상현씨밴드 멤버들은 대체로 몇 년생인가요. 015B의 음악에 대한 추억이 있나요. 나상현 씨의 아버님이 015B 멤버들과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버님의 소감이나 에피소드도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현: 저는 95년생입니다. 빠른 년생이라 나이를 취사선택하고 있지요. 일단 작업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015B분들의 태도에 많이 놀랐습니다. 저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시고 최대한 저희 색깔을 살려주시려고 노력하는 부분에서 여러모로 많이 배울 수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015B 1집 당시 베이스 세션을 하셨고, 015B 멤버분들과 친분이 있다 보니 작업 과정에 관심을 많이 보이셨고, 발매 전에도 피드백을 마구마구 주셨습니다. 다행히 곡 자체에는 만족하시는 것 같아요.
승렬: 저는 정직한 93년생입니다. 015B 노래는 제가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 아버지 차에서, 그리고 라디오에서 종종 들었던 것 같습니다. 윤종신님의 목소리도 015B를 통해서 처음 들었습니다. 015B 분들과 작업을 막 시작했을 때, 특유의 감성과 가사를 지닌 예전 노래들을 다시 쭉 들어보며 그때 기억이 나서 시쳇말로, 센치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작업 과정에선 015B 분들이 저희의 음악, 가사, 캐릭터들을 충분히 고려해 주셔서 ‘함께’ 작업을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믹싱을 맡겨주셔서 꽤나 부담이 되었던 기억, 호주에서 여행 중 친구의 작업실을 빌려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현웅: 저는 94년생이고요, 015B의 음악은 조금 간접적인 향수로 남아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밴드부에서 활동하며 음악을 검색하며 자주 접해서 바로 윗세대에 대해 자주 느끼게 되는, 왠지 나도 라이브를 본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함께 작업할 때 저희를 존중해 주시는 게 느껴져서 편안하고 감사했습니다.
Q. 지난해 채널A ‘보컬플레이2’에 참가했죠. 경연이나 오디션 참가 경험이 많은지요. ‘보컬플레이2’에 나가며 느낀 점, 뒷이야기, 출연 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상현: 경연이나 오디션에 참가는 많이 해봤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낸 적은 슬프게도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나가기 싫다는 멤버들을 열심히 설득해서 ‘보컬플레이2’에 나가게 되었죠. 공연 활동을 많이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무대는 느낌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첫 무대 때 저희를 보신 분들이라면 알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초긴장 상태였습니다. 사실 크게 기대를 안 하고 참가를 한 터라 이렇게들 좋아해 주실지 정말 몰랐습니다. <각자의 밤>이라는 곡이 방영 당시 기준으로 발매한 지 반 년이 넘은 곡이었어요. 발매 당시에는 그렇게 반응이 있지 않았거든요. 방영 후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걸 보고 용기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그래도 괜찮게 하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면서 좀 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출연 뒤엔 저희를 알아주시는 분들도 훨씬 많아지고 조금은 더 안정된 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게 돼서 좋습니다!
승렬: 요즘에는 많이 나가고 있지만 제가 합류하고 ‘보컬플레이2’ 방송 전까지 경연이나 오디션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컬플레이2’에 나가기 싫다는 멤버가 저였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프로그램 자체가 음악보다는 각 학교에 초점이 맞춰져 대결 형식을 그리는 포맷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방송을 통해 저희 음악 대신 이미지 소비가 주가 될 것 같았고, 저희에게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방송 이후 <각자의 밤>을 비롯한 곡들에 정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공연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셔서 우려가 기우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끝까지 무대를 버텨낸 나상현씨, 방송 관계자분들, 저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갑자기).
현웅: ‘보컬플레이2’ 이전에 참여한 경연, 오디션은 거의 다 라이브로만 했는데 방송 녹화까지 하는 것은 처음이라 굉장히 긴장한 상태로 참가했어요. 다행히 심사위원 분들이나, 같이 예선을 진행했던 참가자분들께 좋은 평가를 많이 들어서 활동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보컬플레이2’를 통해 저희를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밴드가 다 같이 하는 무대는 한 번밖에 못했을 정도로 다들 굉장히 바빴던 시기라 지원도 안 할 뻔했는데 나상현씨가 어느 정도 강행(?)해준 것에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Q. 2016년 이전에는 거친 질감의 개러지 록을 주로 구사했는데 근년 들어 로파이 느낌의 사이키델릭 록으로 이행하다 최근엔 시티팝의 궤도로 들어선 듯도 해요. 자연스러운 변화(또는 진화)인가요, 전략적인 행보인가요.
상현: 저는 저희 음악 방향에 제약을 두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전략적인 행보라기보다는 주로 작업 당시 제가 좋아하는 음악, 하고 싶은 음악이 많이 담기게 되더라고요. 밴드가 꼭 하나의 색깔을 가지고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한국에서의 인디밴드 활동은 자기 정체성이 확실하고 돋보이는 팀이 더 주목받고 음악적으로 인정받는 경향이 있지만, 저는 저희 팀이 어떤 특정 색깔에 규정되거나 갇히게 되지 않았으면 해요. 앨범 단위 작업을 할 때는 앨범 내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고려해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도록 하지만, 팀의 전체적인 음악 커리어가 통일성을 갖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앨범마다 다양한 색깔의 나상현씨밴드를 보여주고 싶어요.
승렬: 최대한 다양한 갈래의 음악들을 저희의 색으로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저희는 저희 팀을 설명할 때, ‘~ 음악을 하는 팀’ 다시 말해 장르에 따라 규정되는 팀이 아닌, ‘나상현씨밴드 음악’을 하는 팀으로 보여지길 원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나상현씨의 취향과 저희의 취향들을 아울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작업물마다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혹자는 ‘팀 장르가 없다’, ‘팀 색깔이 없다’ 고 비판하지만, 사실 저희 팀 색깔은 멋 부리기 어려워하는 저희 3명의 인물,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웅: 한동안 공연 때 첫 멘트가 “저희는 나상현씨의 음악을 연주합니다” 였는데요, 저희가 발매하는 곡은 결국 나상현씨의 취향을 필두로 각 멤버가 원하는 색깔이 어우러진 음악이 되는 것 같아요. 나상현씨가 들려주는 데모 자체도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이 보이지만, 저희도 그 안에서 더 좋아하는 포인트가 달라지기 때문에 각 앨범마다 자연스러운 스타일의 변화를 주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신곡 <함께>는 어떻게 만들게 된 곡인가요. 제목도 보편적이고 가사도 무척이나 보편적인 단어와 구절들로 가득 차 있더군요.
상현: <함께>는 보편적인 관계의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특수한 상황에 집중하기보다는 듣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쉽게 이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보편적인 단어들 위주로 곡을 쓰게 된 것 같아요. ‘함께’ 무언가를 해나간다는 것이 참 어렵고 상처받기도 쉬운 일이면서도 저희는 항상 함께할 누군가를 다시 찾아 나서게 되잖아요. 그렇게 관계를 향해 나아간다는 느낌이 의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딘가를 향해 함께 떠나는 분위기의 곡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Q. 올해와 내년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좀더 장기적인 목표와 꿈도 궁금합니다. 구체적일수록 좋아요.
상현: 일단 올해 말쯤 EP 발매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공연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라이브를 고려하지 않고 음악을 작업해보고 있어요. 내년엔 정규 2집과 나상현 개인 EP 작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 페스티벌이 다 취소가 되어서 내년엔 페스티벌 무대에 꼭 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장기적으로는 계속 음악 작업하며 역작을 만들고 싶습니다. 대중음악상도 받고, 별 다섯 개도 받고, 차트 인도 하고… 돈과 명예도 많이 많이!
승렬: 올해 이런저런 외부 상황이 좋지 않아 페스티벌 및 몇몇 공연들이 취소되었고, 저희가 계획하고 있었던 공연들 역시 진행할 수 없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내년 초까지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 예상하고, 라이브 보다는 음원 작업에 보다 집중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뜻밖에 생겨난 시간 덕(?)을 보며 개인 작업들과 전시 준비를 열심히 하여 잘 마무리하고 싶고, 나상현씨밴드 EP를 작업하여 연말에 쓱- 발매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상황이 나아져 꼭 국내 페스티벌에 서서 관객분들과 호흡하고 싶고, 장기적으로는 친구들과 오손도손 작업하며 해외 페스티벌을 돌 수 있는 그룹, 국내외 대중과 평단에서 고루고루 좋은 이미지를 가지는 그룹, 그에 맞게 부와 명예도 챙길 수 있는 그룹이 되고 싶습니다.
현웅: 올해의 계획 및 목표 중에 록 페스티벌에 서는 것이 있었는데요, 거의 이룰 뻔하다가 다 취소가 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내년에는 꼭 나가고 싶네요. 장기적으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페스티벌에도 초대받는 밴드가 되고 싶습니다. 지리적으로 가깝게는 ‘후지록페스티벌’에서, 멀게는 ‘코첼라’와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까지도요!
상현 : ‘문없는집’은 정말 너무 좋은 팀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팀이에요.
2) SICHETMALO┃Tout Seul (All Alone) (Feat. Bona Zoe)
승렬 : 시원해집니다. 경쾌한 드럼라인, 시원한 Bona Zoe의 보이스.
현웅 : 해지는 골목을 걸을 때 듣기 좋은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