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길게 음악인의 삶 이어가고 싶어"
2016년 SBS ‘서바이벌오디션 K팝스타’ 시즌5 준우승. 안예은의 이력서에서 가장 굵은 이 한 줄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안예은의 세계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역부족이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TV 경연 프로그램 출신 가수의 전형을 깼기 때문이다.
정갈한 한글 가사로 쓴 때로 한스럽기까지 한 가사의 정서는 곧잘 단조의 처연한 악곡에 담는다. 리얼 악기를 써 편곡한다. 전자음악과 ‘쿨 바이브(vibe)’를 내세운 동시대 젊은 싱어송라이터들과 자신 사이에 또렷한 붉은 선을 긋는다. 이런 접근법은 자칫 신파적이거나 유치하게 들리기 쉽다. 그러나 안예은 특유의 호소력 있는 악곡과 가창 덕에 묘한 설득력을 갖는다.
지난 여름, 가장 서늘하고 기묘한 싱글 ‘능소화’를 낸 안예은이 궁금했다.
인터뷰: 임희윤 기자|사진제공: 더블엑스엔터테인먼트
Q. 8월에 싱글 <능소화>를 냈죠.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공포 분위기가 가득했어요. '지옥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가사가 인상적인데 어떤 이미지를 상상했으며 어떻게 표현하려 한 곡인지 궁금합니다.
납량특집 콘셉트로 가자고 결정한 만큼 조금은 더 격한 표현을 써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떠나간 사람에 대해 원망을 하다가 스러지는 것이 아닌, '너도 나도 지옥에 갈 것이니 지옥에서 다시 만나보자 그땐 가만 안둔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Q. 창법과 멜로디에서 한국 전통 창을 연상하는 분들이 많아요. 혹시 국악을 배우거나 국악에 관심을 둔 적이 있나요. 안예은식의 독특한 창법은 어떻게 해서 형성한 건가요?
정말로 많이, 언제나 듣는 질문인데요. 국악을 배운 적은 전혀 없으나 그에 대한 흥미는 많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창법에 대해 나름의 추측을 해 본 결과로는, 청소년기에 색이 짙은 여성 보컬들(김윤아, 시이나링고 등)을 따라 부르며 그것이 원래 제 목소리와 잘 섞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Q. 가사에서도 국악이나 한국 전통문화의 영향이 느껴져요. 혹시 원래 국사나 역사소설, 판소리 같은 것을 좋아하나요? 아님 가사를 쓸 때 그런 것들 펼쳐보는지요.
사극도 옛날 어투도 국악도 모두 좋아하고, 역사 관련 서적이나 흥미로운 짧은 글들도 좋아합니다. 근래에는 한국만의 옛 어투를 많이 알고 싶어서 근현대 한국소설을 많이 읽으려 하고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가지게 된 어휘들로 해결이 되지 않을 때는 인터넷 사전을 뒤져봅니다. 요새 유의어, 반의어 란이 정말 잘 되어있거든요. 기회가 되면 역사도 판소리도 꼭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Q. 코로나19로 많은 음악가들이 쉽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어요. 안예은 씨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요. 혹시 집에서 음악 작업에 매진하고 있나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음악은 하나도 안 하고 있고요.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장시간 앉아있어 힘들 때는 좀 누워주고, 괜찮아지면 다시 책을 읽고,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고...
Q. 편곡적으로는 전자음에 의존하기보다 리얼 밴드를 많이 활용하는 것이 인상적이에요. 밴드 음악에 혹시 많은 애착을 갖고 있는지요. 좋아하는 록 밴드나 어떤 장르의 밴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대학교 때만 해도 저는 록밴드의 일원이 되는 것을 꿈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굳이 노래를 하지 않아도 그냥 "밴드"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음대 재학시절 친구들과 록밴드를 하기도 했었어요. 추억을 미화하는 것 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재즈와 발라드를 하는 친구들이 많을 때 였고 그것이 시류 같은 것이었는데, 저는 나름대로 자기 방향성이 뚜렷한 친구들과 함께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때는 일본 비주얼록의 대표주자인 ‘엑스재팬’과 ‘시이나링고’의 <동경사변>을 너무나 좋아했고, 대학교에 오면서 ‘오아시스’, ‘프란츠 퍼디난드’ 등의 영국 록커들과 완전히 사랑에 빠졌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모두 좋아합니다. 제가 컴퓨터를 잘 못 다루는 탓도 있지만 그래서 더더욱 리얼밴드에 마음이 가는 듯 합니다.
Q. 주변에서 안예은 씨를 잘 아는 분들이 성격에 대해 주로 해주는 말은 어떤 건가요? 스스로 볼 때,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친구들은 전부 네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제발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저는 그 누구보다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책을 좀 좋아하고 기억력이 좋은 편의 사람인 것 같습니다.
Q. 안예은 씨의 노래는 꿈속에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꿈을 많이 꾸는 편인가요? 주로 어떤 꿈을 많이 꾸나요? 혹시 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도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꿈과 관련하여 쓴 곡은 3집에 실려있는 <꿈>이라는 노래가 있겠습니다. 우울증이 심할 때 쓴 노래였어요. 그 외에는 아직 꿈을 소재로 쓴 노래가 없지만 꿈을 많이 꾸고 흥미로워 하며 해몽도 열심히 찾아봅니다. 인간의 무의식이라든지 왜 이것을 길몽으로 또는 흉몽으로 생각하는지 등에 굉장한 재미를 느낍니다.
Q. 올해와 내년의 계획, 그리고 음악가로서 장기적인 목표나 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올해는 일단 잡혀있는 일정들을 무탈히 소화해 내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공연들도 무사히 끝내고, 곧 발매될 싱글도 즐겁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내년에는 상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져서 올해보다 조금이라도 더 공연을 많이 하게 되었으면 좋겠고요. 언제나 같은 제 꿈은 최대한 길고 안정적이게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 안예은's 덕밍아웃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유구하게 이어져오고 있는 저의 취미는 바로 독서입니다! 유년기 때의 저는 아이답지 않게 물욕이나 식욕이 하나도 없었는데 유일하게 욕심을 내던 것이 바로 ‘책’이었다고 하네요. 그 어린이가 그대로 커서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요즘은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활자를 읽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어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들어요. 독서 덕분에 제일 많이 도움을 받은 분야는 작사인데요. 책을 읽으면 어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가보지 못한 나라, 현실에 없는 세계까지 여행할 수 있어 아주 즐겁습니다. 이 외에도 엄청난 장점들이 많으니 독서는 ‘무해백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ㅎㅎ 제 SNS에 제가 읽은 책들을 꾸준히 올리고 있으니 구경해보셔도 재미있으실 거예요!
* 안예은's 띵곡
1) 유아 - 숲의 아이
최근 발매된 한국노래중 제일 열심히 들었던 노래입니다. 멜로디, 유아님의 목소리, 무대 퍼포먼스까지 너무 좋아요. 이름모를 숲에 와서 요정들의 축제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느낌.
2) 안예은 - 도깨비
명곡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제일 애착이 가는 노래라 기회가 될 때마다 알리고 싶습니다: 재밌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