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성숙해져가는 어느 평범한 밴드의 노래’
관객 분들이 열기로 채워주시는 공연장의 온도가 좋아요
‘앵콜요청금지’ ‘보편적인 노래’ ‘졸업’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교정 잔디밭에 앉아 만든 듯 순정한 멜로디다. 소박한 언어로부터 때때로 치솟는 더운 결기. 노래 속에선 때로 냉혹한 현실도 고개 든다.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 오랜 새 노래 같다. 언젠가 다락방에 올려두고 잊은 앨범처럼, 흑갈색으로 빛바랜 사진들처럼. 노래는 부스스 먼지를 날리며 푸드덕거린다. 듣고 있자니 문득 읽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무려 9년 만의 정규앨범이다. 3집. 제목이 ‘속물들’. 첫 곡(‘좋은 사람이 아니에요’)부터 밴드는 음의 계단을 덤덤히 오르내린다. 그러나 행간은 과연 좀 섬뜩하다. 이들은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여름 맞이 장기공연 시리즈 ‘이른 열대야’를 최근 마쳤다. 무대 위에서 네 사람은 더 이상 아마추어리즘이라 부르기 힘든, 미니멀리즘의 힘을 보여줬다. 보편적 노래의 특별함을 양껏 분출했다.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더 뻔한 노래’
인터뷰: 임희윤, 사진제공: 스튜디오 브로콜리
- 정규앨범은 거의 9년 만이에요. 3집을 내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뭔가요.
사실 이렇게 오래 준비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정규 앨범으로 완결되는 하나의 덩어리를 만드는 게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1/10 EP나 싱글 작업을 하면서 그게 3집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 곡들은 결국 3집 앨범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앨범 속물들에 담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나 봐요. 그리고 멤버들 개개인의 사정도 겹치면서 작업이 미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렇게나 오래 걸렸네요. (향기)
- 앨범 타이틀이 '속물들'이에요. 2집에 실린 '졸업'에서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라고 했는데, '꽤 비싼 건물도 요즘은 빈 자리가 많다고/하지만 그런 거라도 가지고 싶어'는 졸업한 뒤 사회에 나와 어쩔 수 없이 속물이 된 그 사람의 이야기일까요?
딱히 그런 느낌은 아닌데요, 세상에 믿을 게 없으면 기댈 건 돈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덕원)
- '서른'에서는 객원 보컬 이아름 씨를 기용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처음에 '서른'이라는 곡을 공유한 후 류지가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편곡을 진행하면서 대략의 리듬이 나왔는데, 기본적으로 박자를 많이 쪼개고 심벌이 많은 등 드럼 플레이 자체로 어려운 부분이 있는 상태에서 보컬까지 류지가 맡는다는 것은 라이브 등을 고려해봤을 때 위험부담을 많이 지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객원보컬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덕원 오빠가 예전에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눈여겨보았던 아름 씨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를 제안했죠. 직접 만나고 서른을 들어본 후 이견 없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잔디)
- '서른'이란 곡을 쓰려면 '서른 즈음에' 같은 명곡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게다가 덕원 씨는 서른 살도 아니잖아요. 어떻게 이 곡을 만들었나요?
평균 기대 수명이 20년은 늘어난 시점에서 같은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용은 어떤 접점도 없을 수 있겠죠. 그러게요. 서른 살도 아닌데 어떻게... 왠지 진정성이 부족한 느낌이네요. (덕원)
- '혼자 살아요'는 가사가 재밌어요. '너는 왜 이렇게 못돼 처먹었니' 하고 말하는 사람을 피해 가자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학생 때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자기가 하는 말이 얼마나 황당하고 말이 안 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덕원)
저도 언젠가 어렸을 때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요.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 말을 한 사람은 제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류지)
- 여름 장기공연 '이른 열대야'를 하고 있어요. 멤버들에게 여름은 어떤 계절인가요? 마침내 3집을 낸 올 여름은 또 어떤 계절인가요?
나이가 들수록 더위를 덜 타고 추위를 더 타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엔 리허설 때나 대기실에 있을 때 춥게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관객분들이 열기로 채워주시는 온도가 좋습니다. 더 뜨거울수록 좋아요. 그리고 여름.. 아이들이 모기에 좀 덜 물렸으면 좋겠습니다. (잔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바로 여름입니다. 여름의 열기도 저는 너무 좋고요, 한낮의 더위가 한풀 꺾인 여름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이런 여름에 특별한 공연을 계속 이어올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직 3집 밴드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잘 나지 않아서 일단은 무사히 이른 열대야를 마치는 게 목표입니다. 아마도 이 공연이 끝나야 3집 이후를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향기)
브로콜리너마저's 띵곡
1) 브로콜리너마저 : 좋은사람이 아니에요
3집 첫 곡.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 애정이 가는 곡이에요. 이번 '이른 열대야' 공연에서 시작 부분을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부르고 있는데, 다양한 느낌이 재미있어요.
2) 전자양 : 열대야
제목처럼 지금 계절에 딱 어울리는 곡이에요. 높은 습도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