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이의 카타르시스를
증폭시키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글 임희윤 ㅣ 사진 스튜디오 빌리빈 지운 ㅣ 스타일리스트에 김하성 ㅣ 편집 오상훈
저 멀리 안개 낀 런던이나 맨체스터에서 길어올린 듯 영롱하거나 몽롱한 기타 사운드, 단속적이나 유려한 비트. 밴드 너드커넥션의 인상은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뮤즈, 콜드플레이 같은 영국 록 밴드의 향취로 시작한다. 그러나 자욱한 영국 색깔 안개 위로 서영주의 명징한 보컬이 얹히는 순간, 음악은 국경을 잃고 오로지 청자 개개인의 감성을 향해 총력으로 질주한다.
2017년 결성, 2018년 데뷔. 연세대 밴드 동아리에서 출발한 이들의 이력서는 인트로부터 화려하다. 전 세계 인디 밴드의 각축장인 에머겐자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것. 보컬 서영주는 근년에 엠넷 '너의 목소리가 보여', JTBC '싱어게인'에 출연하면서 일반 대중에게도 조금 친숙해졌다.
각광 폭발 직전의 너드커넥션은 그러나 음악적 타협이라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 뜻밖의 사운드, 의외의 종결로 악곡의 캔버스를 칠해간다.
팀명이 재밌습니다. 구글링을 하다가 우연히 짓게 된 이름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래도 '이거다!' 싶은 느낌이 든 까닭은 무엇이었나요. 어감? 의미? 또, 멤버들 모두 혹시 너드(nerd)인가요? 맞다면 어떤 점이나 분야에서 그러한지, 아니라면 또 어떤 점에서 너드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영주 : 솔직히 맨 처음부터 ‘이거다!’ 싶은 느낌이 들진 않았어요. 바꿀 기회가 있다면 바꿔 보는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고요. 근데 올해 들어서야 처음으로 이름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음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익숙해져 가고 있기 때문에 정이 드는 느낌. 멤버들 모두 너드 기질이 확실히 있습니다. 음악 할 때만큼은 정말 진심이고 진지해요. 그럴 때 좋은 의미의 ‘너드미’가 나오는 것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이름은 더욱더 바꾸고 싶지 않아요.
재현 :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본업으로 음악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 하나로 온 에너지를 쏟아붓는 이 광경 자체가 ‘너드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애정을 쏟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름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바꿀 기회가 있다면 한번 바꿔보고도 싶습니다.
사운드 메이킹과 편곡적인 면에서는 다분히 영국적입니다. 그런데 보컬에서는 대단히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지기도 해요. 서영주 씨의 음색과 창법에 대해 밴드 자체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영국 밴드 말고 한국의 밴드나 가수에게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요?
연태 : 영주의 노래에는 추억을 회상하게 하고 어떠한 향수와 아련함을 불러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끔 공연 도중에도 그의 노래에 집중해 제 연주를 잊을 뻔했던 적이 있어요.
승원 : 저는 개인적으로 영주의 음색이 날 것의 현악기 같다고 생각해요. 거칠고 개성 있으면서도 다른 악기 사운드와 부드럽게 융화된다는 점에서 밴드 보컬로서는 최고의 악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현 : 영주의 보컬 색과 창법은 너드커넥션의 많은 장점 중에 가장 도드라지는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친구의 보컬 능력이라면 다른 모든 걸 포기하고 내 인생 전부를 걸 만하다고 생각해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주의 보컬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많이 느껴진 적은 없는데, 뭔가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독자적인 음색으로 재해석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영주 : 저 스스로는 보컬 음색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지만,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좀 더 발전된 표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정서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해외 밴드 말고도 국내에서 넬, 국카스텐 같은 선배님들 그리고 故 김광석 선배님의 음악과 음색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저희 음악에도 녹아들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영국 록의 향취가 짙어서 자칫하면 곡을 만들 때 '어, 이거 그 밴드 이 노래랑 비슷하네?'로 빠질 가능성도 상존할 것 같아요. 작사 작곡 편곡 과정을 거치면서 너드커넥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찾는 비결은 뭔가요?
승원 : 저희가 만들고 연주한다는 점 자체가 오리지널리티라고 생각해요. 같은 음악이라고 해도 누구를 거쳐서 나오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잖아요. 다만 표현에 있어서 저희가 좋아하고 익숙한 방법들로 튀어나오기 쉬우니 어떻게 하면 내면에 있는 것들을 더욱 새롭고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노력합니다.
영주 : 간혹 만들어 온 작업물에서 익숙한 곡이 연상이 되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같이 들어보고 검열해 보는 시간을 가지곤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쓰지 않거나 아예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됩니다.
재현 : 멤버 모두가 공통적으로 영국 록을 좋아하긴 하지만 즐겨 듣는 음악은 각각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편곡 과정에서 자연스레 많은 장르들이 융합되는 과정을 거치게 돼요. 결성 이후 수많은 작업의 시간들이 흐르다 보니 저희만의 스타일이 확고해지고 있고, 그것이 저희의 오리지널리티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악곡이 드라마틱합니다.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물을 보고 영감을 받기도 하나요? 혹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 있다면 어떤 작품일지 궁금합니다.
재현 : 개인적으로 드라마나 영화뿐만이 아니라 책이나 전시 같은 것도 다 즐기는 편이에요. 여러 매체를 통해 영감을 받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Back in Time’의 경우 ‘너의 결혼식’이라는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V’는 ‘V for Vendetta’라는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영주 : 유일한 취미가 영화를 보는 일인데, 영화를 보고 바로 영감을 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보통 시간이 지나 작업 중인 곡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인데, 이례적으로 영화가 바로 모티브가 된 곡이 ‘Marion’입니다. ‘Requiem for a Dream’이라는 영화를 보고 가사 주제를 떠올렸어요. 청소년은 절대 관람하지 마세요.
신곡 'Life Dancing'은 드럼 비트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콜드플레이의 'In My Place'가 떠오르기도 해요. 그런데 3분 16초의 길지 않은 러닝 타임 중에 느린 템포의 인트로 드럼에 무려 네 마디나 할애한 이유가 궁금해졌어요. 어떤 의미가 담긴 장치일지요.
재현 : Life Dancing의 인트로와 마지막 후렴의 드럼 플레이는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곡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리듬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 같아 좋습니다.
연태 : 고요한 곳에서의 외침은 많은 것들을 집중시키고 여러 생각들을 하게 만듭니다. 인트로의 드럼 리듬은 청자로 하여금 이 곡에 집중하게 하고 곡을 반복해서 들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줄 것입니다.
승원 : 드럼 인트로로 시작하는 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리기보다는 다음 부분을 궁금해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줘서 곡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작업했습니다. 편곡 과정에서 2마디로도 연주해봤는데 와닿지 않더라고요.
영주 : 노래의 주제가 ‘인생은 하나의 춤사위로 보인다’는 것인데, 드럼 인트로 덕에 막이 오르고 불이 켜진 극장 무대에 무용수가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게 할 수 있었어요. 드럼 인트로는 사실상 곡의 주제를 담고 있는 장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규 1집을 곧 낸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색깔일지 궁금해요. 1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무엇인지요. 혹시나 스토리를 가진 콘셉트 앨범이 될까요? 장르나 분위기는 그간 너드커넥션이 보여준 스펙트럼에서 얼마나 벗어나거나 거기 머물까요?
영주 : 1집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는 어떤 것의 부재,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갈망에서 오는 감정들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완벽한 서사를 배제한다면, 하나의 콘셉트 앨범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장르나 분위기는 그간 저희가 들려드린 음악들에 많이 걸쳐 있으면서도 다릅니다. 아예 새로운 느낌이 드는 곡들도 있어요.
승원 : 누구나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 중에는 어느 시대의 문화와 예술이 정점이었다 얘기하는 것들도 포함되고요. 저희에게는 너무 어려서 즐기지 못했던 20세기 말 21세기 초의 음악들이 그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음악들에 대한 동경이 담겨있는 앨범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언젠가부터 거의 2, 3개월에 1곡꼴로 신곡을 내고 있어요. 늘 작사 작곡 편곡 아이디어가 넘치는 편인가요? 평소에 다작하는 편인지요. '곳간'에 쌓아둔 곡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요.
승원 : 각자의 ‘곳간’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는 사실 서로 몰라요. 제 경우에는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나 평소에 생각해왔던 것들을 기록 또는 기억해두고 필요할 때 하나하나 꺼내는 편입니다. 너드커넥션으로 완성된 음악들로만 보자면 다작은 아닌 것 같아요.
영주 :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작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곳간에 쌓아 놓은 건 많은데,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보관만 해놓은 것들이 많거든요. 그래도 좋은 소식은 중요한 순간에 보관된 작업물들이 뜻밖의 결과를 내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어떤 곡을 쓸 때 문득, 예전에 별로여서 보관함으로 갔던 작업물이 떠올라 가지고 와보면 찰떡같이 어울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기분이 아주 좋고 곡이 절 찾아온 느낌이 들기 때문에 무조건 뭔가가 떠오르면 우선 곳간에 저장합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 저축만이 답이다.”
재현 : 시시때때로 메모장이나 음성메모에 순간적인 아이디어를 저장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다시 듣고 괜찮으면 혼자 곡으로 발전시키기도 하고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둡니다. 나중에 새롭게 재탄생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가사 한 줄이나 짧은 멜로디의 형태가 상상 이상으로 많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너드커넥션은 어떤 밴드가 되고 싶나요. 올해와 내년의 계획, 또 장기적인 목표와 꿈도 궁금합니다.
영주 : 우선 올해는 무사히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앨범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빼놓지 않고 다 하는 게 목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정신 건강을 잘 챙기는 게 목표고요. 언제나 듣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카타르시스나 희열을 느끼게 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승원 :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밴드였으면 좋겠어요. 음악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하나의 팀으로서요. 하지만 일단은 올해도 내년에도 음악 작업 및 활동에 매진할 예정입니다.
연태 : 많은 분들에게 다양하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단순하게 공연장에서 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소, 다양한 방법으로 저희 음악을 들려드리고 같이 공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공감에 힘을 얻어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고 다양한 곡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오래오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재현 : 음악적인 스킬과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듣는 이의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는 밴드가 되고 싶습니다.
*'너드커넥션's' 덕밍아웃*
멤버 넷 다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함께 모여서 작업실이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각자 보고 좋았던 영화를 서로 공유하기도 합니다. 영화 취향도 비슷해서 멤버들이 추천하는 영화는 믿고 보는 편이에요. 굉장히 많은 영화를 함께 봤지만 저희가 그 중에 최고로 꼽는 영화들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들입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어지는데도 깔끔하게 처리된 마감이 저희가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에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어요. 아직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접해보지 못하신 분들께 최고의 명작 ‘펄프 픽션’을 추천드립니다!
*'너드커넥션's' 띵곡*
1. Coldplay - Everything’s Not Lost
곡 자체의 음악적 완성도 외에도, 이 곡은 청자들과 감정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명곡이라 평하고 싶어요. 듣고 있으면 현재의 감정을 증폭시킬 뿐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을 준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앨범의 다른 곡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트랙인데, 그 점이 밴드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세지를 더욱 강조하는 것 같아요. - 모든 고난과 문제들 속에서, "Everything’s Not Lost.".
2. Bob Dylan - Knocking on Heaven's Door
말이 필요없는 명곡이죠.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하신 분이니 가사에도 집중해 들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