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만큼이나 편안함에 무게 두고 싶었어요’
아마도 이상은은 아이돌 스타에서 아티스트로의 전환이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진, 국내 대중음악사에 지극히 드문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 선택해 이뤄낸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기획사의 입김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감성과 의지로 하나씩 만들어 온 그녀의 음악들은, 애초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으나 마치 홍대의 인디음악가들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은 것 같다. 그래서 숱한 후배 인디뮤지션들이 이상은을 ‘워너비’로 삼는 게 아닐까? 그렇게 5년 만에 16번째 신작을 들고서 돌아온 그녀는, 데뷔한지 무려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젊고 또 ‘인디’스러웠다.
인터뷰: 김희준
전작 이후 5년 만에 정규가 아닌 EP앨범을 발표했어요. EP발매는 처음인걸로 아는데, 의도가 있을까요?
준비 과정에서 한 앨범에 10곡 이상씩 담아내어 듣는 분들이 줄어가고 있고, 싱글발매가 추세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전 한 두곡만으로 앨범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봤는데, 그래도 5~6곡 정도라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정규 앨범만큼의 노력을 들이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이번 앨범을 만들었죠. 그래서 EP이지만 제겐 정규반과 별 차이가 없어요. 특히 가사에 아주 많은 공을 들였는데, 그 점에선 이전 어떤 앨범보다 더 신경을 썼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보니 앨범 전체의 완성도라는 게 뚜렷이 생기는 것 같더군요. 처음 해보는 시도이지만 꽤 만족스러워요.
이전 앨범 <LuLu>에서부터 좀 더 밝고 친근한 느낌이 음악에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건 심경, 멘탈리티의 변화에서 비롯된 걸까요?
14집<스타더스트>가 실험적인 시도를 해서 호불호가 뚜렷했어요. 특히 오래된 팬 분들이 다소 난감해하곤 하셨는데, 이후에는 담백하고 평범한 분위기의 음악을 해보고 싶더군요. 그래서 <LuLu>를 만들 때 좀 더 힘을 빼고 편안하게 담아냈는데, 해보고 나니 그 느낌이 흡족하기도 하고 반응도 좋아서 한 번 더 비슷한 방향으로 간 게 바로 <Flow>에요. 약간 오해가 있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어느 하나 힘들고 치열하지 않은 게 없어요. 다만 예전에는 그걸 가감 없이 음악에 반영했다면, 이제는 그걸 수렴할 줄 안다는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 듣는 분들에게 굳이 그런 강한 감정들을 전달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이런 점에서 좀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로지 ‘나’보다는 사회 속의 나, 또 타인에게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수 이상은’이 화두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번 앨범에는 그런 고민에 대한 결과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해요
전작은 전체적으로 혼자 다 진두지휘한 거라면, 이번 앨범은 이능룡, 강이채, 이규호등 곡마다 개별 편곡자의 조력이 큰 거 같습니다.
곡마다 편곡자를 다르게 해보자고 아이디어를 낸 게 앨범 전체의 프로듀서인 김기정씨인데, 솔직히 제가 인디 음악가분들에 좀 문외한이어서 그분들을 잘 몰랐어요. 그런데 함께 작업해보면서 이 분들이 너무 성의 있게 마치 자기 작업인 것처럼 임해주시고,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내주시는 거에요. 지금껏 음악해오면서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신경써주시는 분을 좀처럼 만나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참여해주신 편곡자분들은 모두 다 그렇게 해주셨어요. 하고나서 보니 일의 진척도 빨라지고 의견교환도 수월해서 좋았던 거 같아요.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80년대에 데뷔해 지금까지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일관되게 유지해 온 대중음악계에 몇 안 되는 가수가 ‘이상은’이라고 생각해요. 그 흔한 예능하나 하지 않고 말이죠. 비결, 원동력은 뭐라고 보세요?
흠...이런 거 같아요.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금 트렌드가 뭔지를 파악하고,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단, 제가 할 수 있는 건 받아들이고, 아니다 싶은 건 취하지 않았죠. 때론 새로운 걸 하다가도 대중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법한 음악들을 만들며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함께 이뤄졌던 거 같아요. 그렇게 새로움과 편안함의 농도가 적절해지도록 컨트롤 해온 게 지금껏 커리어를 유지해올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닌가 싶어요
그럼 앞으로도 그런 줄타기를 계속 이어가시면서 작업을 하시겠네요
네. 그럴 거예요. 그리고 음악을 만든다는 게 그 동안 살아온 과정들, 생각과 경험들이 함께 묻어나고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 삶 자체가 지극히 소시민적이고 평범한데 매번 심각하게 음악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처럼 담백하고 편안하게 어필하고 싶을 땐 힘빼고 어쿠스틱한 편성으로 음악을 만들어보는 거죠. 안 그래도 다들 사는 게 녹록찮은데 음악에서까지 부담을 줄 필요가 없잖아요? 그 분들에게 제 음악이 공감과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요.
이상은's 띵곡
1) 이상은 : '넌 아름다워'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곡. 사람이 다 다른 빛으로 그려진 길이 있으니 그 길을 잘 따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2) 캐롤 킹(Carole King) : So Far Away from
쓸쓸함을 노래했지만, 가을에 들으면 스웨터를 꺼내 입은 듯 포근하고 치유력이 있어요. 이 노래가 가을타는 마음이 아프지 않고 잘 승화 될 수 있도록 해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