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을 앞둔 어느 날
아도이와 나눈 이야기
글 임희윤 ㅣ 사진 아도이ㅣ 편집 오상훈
길쭉한 흑백 건반에서 흘러나오는 검고 동그란 음표 알갱이를 한 입, 또 한 입 깨물어 본다. 뜻밖이다. 이런 느낌. 입 안에서 톡 터지는 시원한 알갱이는 틀림없이 셔벗의 것이다. 빨강, 노랑, 파랑…. 형광색으로 빛나는 네온 빛 얼음과자. 귀여운 게임 속 앙증맞은 보석처럼. 음과 음의 빛나는 행진. 차가운 리듬의 컨베이어 벨트 위를 예쁜 멜로디가 달려가면 무지개를 쫓는 귀는 몽글몽글해진다. 신스팝, 드림 팝, 시티 팝….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로맨틱한 아도이의 음악은 오늘도 도시를 부유하며 말랑말랑 진공 방전 한다.
2019년 정규 1집 ‘VIVID’ 이후 거의 2년 만인 지난해 8월에 EP 'her'를 낸 아도이가 이번엔 2월 1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첫 북미 순회공연에 나선다. 샌프란시스코의, 시애틀의, 뱅쿠버의, 시카고의, 뉴욕의 공기 중 어딘가로 아도이의 음표가 퍼져나갈 것이다. 열기 앞에 누군가는 또 ‘K-’란 접두사를 붙이려 들지 모른다. 그러려면 그러라지. 쿨한 우린 차라리 그저 ‘A-’를 붙이리라. 출항을 앞둔 어느 날 아도이와 나눈 이야기.
- 밴드명 ADOY는 오주환 씨가 기르는 고양이의 이름을 뒤집은 작명이라고 들었어요. YODA 씨는 잘 지내나요? 혹시 아도이의 음악에 직간접적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생명체나 무생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다가 최근에 아파서 병원을 다녀왔는데요. 다행히도 치료를 잘 받아서 지금은 아주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M83, 비치 하우스(Beach House), 디스트로이어(Destroyer), 더 엑스엑스(The XX), 테임임팔라(Tame Impala) 같은 최근의 밴드들과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 같은 1980년대 신스 팝 밴드들. 다프트 펑크(Daft Punk) 및 뱅어 레코즈(Ed Banger Records) 소속 아티스트들의 음악들. 아도이의 음악은 훌륭한 작품들과 날씨, 그리고 사랑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는 것 같습니다.
- 작년 8월에 'her'라는 EP를 냈어요. 팬데믹 이후에 처음 내놓은 작품이네요. 코로나19로 음악계 여기저기가 멈춰섰는데 아도이에게 근래의 2년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어떻게 지냈으며 멤버 각자에게, 그룹에게 어떤 것이 달라졌나요. 또, 변하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코로나 초반엔(2020년 상반기)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끝나길 기다렸던 것 같아요. 여름엔 할 수 있겠지 싶다 가도 그럴 수 없다는 게 현실화 되자 빨리 인정하고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매진됐던 단독공연이 취소됐고, 아시아 투어도 한차례 연기했다가 결국엔 취소했고요, 러시아 페스티벌도 취소됐고, 미국 공연도 취소됐고... 그 뒤로 줄줄이 취소되었어요. 뭐 너무 많아서 전부 다 언급하기가 어렵네요. 취소도 취소지만 공연 한 번 하기가 굉장히 부담스럽고, 또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응해야 했고, 기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온라인 공연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온라인 비대면 공연과 드라이브 공연, 그리고 새로운 굿즈 판매 등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해나갔습니다. 그런 와중 지난여름 새로운 앨범을 발매했고, 어느새 겨울이 됐네요.
- 복고적인 신시사이저와 기타 사운드가 아도이 음악의 독특한 첫 인상을 장식해요. 최근 작품에서 가장 즐겨 사용한 악기나 장비가 있다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들이 가진 장점과 개성도 설명해주세요.
롤랜드사에서 나온 주노라는 신디사이저가 있는데 레트로한 감성이 있는 악기라서 즐겨 쓰고 있습니다. 일렉기타는 깁슨의 사운드보다는 펜더계열의 소리들을 주로 사용했고요. 기본적으로 한 가지만 쓰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가상 악기들을 레이어하고 그 위에 또 이펙터나 이큐 등 여러 가지 장비들을 이용해서 톤을 만들어 내는 편이라서 활용 범위가 넓은 게 장점이고요. 또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사운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얼마 전 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를 봤어요. 청량감 넘치는 신스팝 사운드를 들으며 아도이가 생각나기도 했네요. 최근 공개된 '비틀즈: 겟 백'도 재밌었네요. 아도이 멤버들이 최근 흥미롭게 본 음악 영상(영화)은 무엇인가요? 혹시 작업이 잘 안 풀릴 때 특별한 에너지를 주는 뮤직비디오나 공연 실황, 음악 영상이 있을까요?
‘듄’ 을 재밌게 봤습니다. 세계관이 엄청나더라고요. 평소에 드니 빌뇌브 감독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티모시 살라메도 너무 멋지게 나와서 보는 내내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또 최근에 ‘첨밀밀’을 다시 봤는데 무척 좋았습니다. 중국의 신예 감독인 비간이 연출한 ‘지구 최후의 밤’이라는 영화도 환상적이고 좋았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콜드플레이(Coldplay)나, 다프트 펑크(Daft Punk), 위켄드(The Weeknd)처럼 언제나 멋지게 해내는 팀들의 공연이나 음악들을 보며 의지를 다지는 편입니다. 이들의 음악에는 긍정적인 힘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좋은 방향으로 안내받는 느낌입니다.
- 아도이는 왠지 듣는 음악도, 먹는 음식도, 다니는 곳도 힙할 것 같습니다. 요즘 가장 꽂혀 있는 음악은, 음식은, 장소는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똑같이 유행하는 맛집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좋다는 전시 가는 거 좋아하고요. 그런데 줄이 너무 길면 망설여지고, 배달 음식 시켜 먹고 그렇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져서 노포가 좋습니다. 음악은 몰챗 도마(Molchat Doma)의 ‘Sudno’ 라는 곡을 듣는데요. 조이 디비전 (Joy Division)이 생각나는 포스트 펑크의 요소가 있는 노래예요. 벤사이어(Vansir)의 ‘Metamodernity’도 즐겨 듣고 있습니다. 장소는 적벽돌집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요즘엔 건축가 조병수님의 공간이나 이타미 준님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 아도이의 음악은 이제 옥승철 작가의 일러스트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겠어요. 데뷔 때부터 협업을 했죠? 앨범마다 음악적 콘셉트와 시각적 콘셉트를 맞추기 위해 옥 작가와 회의를 하거나 의견을 주고 받는지요. 함께 진행한 시간이 이제 쌓였는데 혹시 옥 작가가 음악에 대한 감상이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주는 경우가 늘었는지도 궁금해요. 아도이와 옥승철, 어떻게 지내는 사이인가요?
최근에 발매한 앨범 ‘her’는 스페인 작가 리카르도 아기네스와 함께 작업했는데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도이 데뷔 때부터 앨범 커버를 작업해주셔서 많은 분이 옥승철 작가와 아도이를 함께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작업할 때 기본적으로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저희 쪽에서 수정사항 등을 요청하면 흔쾌히 적용해주셨어요. 그 반대도 있었고요. 데모가 나오면 먼저 들려드리고, 밤에 작업하실 때 계속 틀어놓고 그림을 그린다고 했습니다. 옥작가와는 가끔 고기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여전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 2월부터 북미 투어에 나선다고 들었어요. 미국이나 캐나다 공연은 처음인가요? 이번 투어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요.(인디계의 BTS..?) 또, 특별히 준비하고 있는 것(연출, 멘트 등등)도 있는지, 투어를 앞둔 소감도 궁금해요.
북미 지역은 처음입니다. 이번 투어를 통해서 아도이의 성장 가능성을 엿보고 북미 지역에 K-pop의 다양성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지금의 상황에서 미국투어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어떤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너무 많은 리스크가 있어서 별탈 없이 공연을 마치는 게 최대의 목표인데요. 투어가 가까워질수록 오미크론이 확산 되는 상황이라서 솔직히 좀 걱정입니다.
- 아도이의 미래는 무엇일까요. 밴드가 가진 올해와 내년의 계획,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와 꿈도 궁금합니다.
점처럼 찍힌 하루하루가 모여서 선이 되듯이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그게 아도이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OTT, NFT등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고요. 더 큰 규모의 단독공연 및 아시아 투어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직 밝힐 순 없지만 재밌는 프로젝트를 여러 개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밴드의 작은 목표는 좋은 관계를 토대로 해외 공연과 국내 공연을 계획대로 무사히 잘 마치는 것이고, 큰 목표는 지치지 않고 계속 열정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도이's' 덕밍아웃*
아도이의 팬분들이라면 모두들 요다를 알고 계실꺼라고 생각해요. 요다는 저에게 참 소중한 존재예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이기도 하고요.
이게 취미라기보단 일상에 가까운데요. 집에서 그냥 요다를 보고 있거나 아니면 요다가 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거나 하는데요. 저는 그게 참 재밌습니다.
너무 귀여운데 카메라에 차마 안담기는 순간이 훨씬 더 많아요. 요다랑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매우 잘되는 사이라서 자랑하고 싶네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다를 쓰다듬고 있으면면 화도 풀리고, 마음이 차분해져서 참 좋아요. 요다가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도이's' 띵곡*
1. The Alan Parsons Project - Eye In The Sky
알란파슨스 프로젝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떤 담백한, 심플함이 떠오릅니다. 40년 전의 음악임에도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나 음의 배열이 애플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 들어도 여전히 세련된 그들의 음악은 이제 클래식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2. Daft Punk - Random Access Memories
다프트펑크는 멤버들 모두 좋아하는 팀입니다. 얼마 전 해체해 매우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 앨범이 있어서 너무 언제든지 너무 다행입니다. <RAM>은 어떤 한곡만 고르기가 어려워서 그래서 앨범 전체를 한곡이라고 생각하고 듣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