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포크와 컨트리, 그리고 록을
균형 있게 잘 보여주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2018년 첫 EP ‘일기’, 2020년 1집 ‘고강동’을 들으며 다부진 어쿠스틱 팝 싱어송라이터의 등장을 반겼다. 그런데 6월에 나온 2집 ‘재활용’을 들으며, 단단한 비트와 전기기타 사운드에 젖어가며 앨범에 적힌 아티스트명을 다시 확인해봤다. ‘박소은’이라는 이름이 조금 평범하다고도 생각해봤다. 그래서…? 그러나! 확실히 저 동글동글 윤기와 탄력을 가진 목소리는 두 사람이 동명이인이 아닌 동일인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단번에 각인될 만큼 붙임성 있으면서도 뻔한 걸 교묘히 피하는 인상적인 멜로디 라인들도 분명 ‘저 박소은’의 것이었다.
‘반복되는 모든 게 날 괴롭게 해요’의 노을빛 리듬을 타며 한강을 건너고 ‘슬리퍼’의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를 들으며 조금만 엉망으로 취해보고 싶었다. 꿈결처럼 늘어지는 ‘고전적 조건형성’을 틀어 두고는 널어놓은 빨래처럼 축 쳐져 있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공기를 만든 박소은은 지금 어떤 생각일까.
글 임희윤 ㅣ 사진 지운 @hereiscloudlandㅣ 편집 오상훈
정규 2집에서 몇몇 곡에서는 로킹한 분위기로 큰 음악적 변화를 줬어요. EP ‘일기’, 1집 ‘고강동’의 표지에서 통기타를 들고 있다면 신작에선 전기기타를 메고 있고요. 어쿠스틱 팝 싱어송라이터에서 로커로 ‘변신’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쿠스틱과 포크도 좋아하지만, 그것과 비슷하게 록도 정말 좋아해요. 두 장르를 동시에 들으면서 자랐고 초창기 앨범은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만들다 보니 구성이 커지고 화려한 느낌보다는 어쿠스틱하고 나긋한 음악들이 자연스레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음악을 계속 만드는 과정에서 포크만큼 좋아했던 록도 잘 만들어볼 수 있겠다 싶은 자신이 생겼어요. 변신이자 성장을 한 거죠.
어쿠스틱 팝이나 포크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박소은에게, 로커로서의 박소은에게, 각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음악가나 롤모델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장르를 좌우하는 편곡적 요소를 떠나 큰 맥락에서 멜로디나 화성, 가사에 있어, 즉 송라이터로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이유도 궁금합니다. (‘고전적 조건형성’에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언급해요. ‘말리부오렌지’는 컨트리 팝 같아요. 그러고 보니 박소은의 목소리, 창법, 음악 전반에서 미국 싱어송라이터의 느낌(버터맛이랄까요)을 종종 느꼈는데요. 혹시 미국에 살다 왔는지도…)
포크 싱어송라이터는 정말 많은 음악가들을 좋아하고 찾아 들었었는데 그중에서 굵직하게 꼽자면 '조니 미첼', '데미안 라이스'입니다. 통기타 하나와 목소리 하나만으로 울림을 준다는 건 어렵고 대단한 것인데 그 둘에게 가장 많이 느꼈던 것 같고요, 록 뮤지션은 정말 너무 많지만 비틀즈, 트래비스, 척 베리, 오아시스, 비바두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정말 잘 모르겠어요. 좋아하고 존경하는 뮤지션들이 너무 많아서 한 명 꼽기가 불가능해요. 미국은 아니지만, 영어 공부하러 해외에 일정 기간 왔다 갔다 하긴 했었습니다. 그리고 서양 쪽 음악을 엄청 즐겨 들어서 그런 느낌이 나는 것 같네요.
‘Whiskey n Whiskey’는 유일한 영어 가사 노래예요. 이 곡만 영어로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위스키라는 소재만큼이나 강렬한 곡인데, 혹시 위스키를 마시고 쓰거나 녹음했나요? 위스키를 좋아한다면,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는 무엇이고 주로 어떤 상황이나 장소에서 마시는지도 궁금해요.
‘해외에서 공연해보고 싶다! 그럼 외국어로 부르는 곡이 한 곡쯤은 있어도 되겠다’ 싶은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던 곡이에요. 위스키를 마시고 쓰거나 녹음한 건 아니지만 위스키를 좋아해서 작업을 마친 후 집에 가서 위스키를 자주 마셨었던 기억이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는 제임슨이고요 제임슨 위스키로 이번에 타투도 했습니다(웃음). 그리고 제 경험에는 위스키를 마시는 날은 둘 중에 하나가 되더라고요. 친구들이랑 북적북적 뭔가를 축하하기 위해 부어라 마셔라 하는 날. 아니면 기분이 적적해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홀짝이는 날.
앨범 표지에서는 펜더 텔레캐스터를 메고 있는 거 같네요. 가장 좋아하는 어쿠스틱 기타, 전기기타 모델이 있다면? 이번 앨범에서 많이 사용한 기타 모델이나 앰프 등 기타 장비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그들이 가진 음향적 특성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좀 자세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어쿠스틱은 마틴 브랜드를 가장 좋아하고요, 제가 10년째 쓰고있는 gpcpa5k 모델을 좋아해요. 일렉기타는 재규어나 머스탱 사운드를 좋아하긴 하지만 제가 쓰는 기타는 텔레케스터입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기타 역시 텔레케스터입니다. 기타 장비는 corona라는 코러스 페달과 wet이라고 하는 리버브 페달을 주로 사용했어요. 저는 공간계 이펙터를 좋아하는 편이라 디스토션보다도 코러스, 딜레이, 리버브 계열을 애용해요. 공간계 이펙터 특성상 room 사운드가 더 넓게 느껴지게 되고, 전체적으로 따듯하고 촉촉해지거든요. 거기에 텔레케스터 특유의 깡깡거리는 사운드를 적절히 섞으면 멋진 톤이 나와서, 그런 식으로 앨범 녹음할 때 활용했던 것 같아요. 앰프는 딱히 신경 쓰면서 녹음하진 않았습니다.
‘이상해 보여’에서는 ‘나만 되게 이상해 보여’라고 노래하네요. 스스로 괴짜, 또는 외톨이 같다는 생각을 곧잘 하는 편인가요? 이렇게 음악으로 표현하면 좋은 일이지만 가끔 그와 비슷한 생각에 힘들 떄가 오면 어떤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자존감을 되찾는지도 궁금합니다. 타파 비결!
어릴 때, 20대 초반까지도 주로 그랬어요. 지금은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 제가 괴짜나 외톨이라기보다는 특이하고, 더 재밌는 코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주변에 저랑 비슷하게 특이하고 재밌는 친구들이 아주 많이 있어서 괴짜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답니다. 그럼에도 가끔씩 그런 순간이 올 때는 '오... 나 지금 되게... 외계인 같다'라고 생각하며 웃어 넘기는 게 가장 속 편하더라고요.
앨범 소개 글에 '아름다운 것들만 예술로 창조되는 건 억울하고 부당해'라고 썼어요. 소은 씨가 알고 있는 ‘아름답지 않은 것들로 만들어졌지만 가장 예술적인 작품’이 혹시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이 ‘(짜증나게 더러운 것들의) 재활용’이라는 음악 제작 태도는 앞으로도 계속 가져갈 건가요?
저는 최엘비의 '독립음악' 앨범이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본인 안에 있던 열등감과 숨기고 싶었던 감정들을 '독립음악' 이라는 앨범에 담아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재활용 했다고 느껴져서 평소에도 자주 즐겨 듣습니다.재 활용을 한다는 태도도 계속 함께 져가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앨범을 만들고 나서 돌아보니 그제서야 알겠더라고요.
저는 늘 그렇게 음악을 해왔다는 걸요.
다음 앨범, 다음 곡에서는 어떤 박소은을 보여줄 건가요? 음악가로서, 인간으로서 올해와 내년의 계획, 장기적인 꿈이나 목표도 궁금합니다.
이번 앨범에서 하고 싶은 걸 다 했다면, 다음 앨범에서는 하고 싶은 걸 '잘'하려고요. 아쉽지 않은 앨범이었지만 다음에는 이번보다 더 잘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어느 한 장르에 묶여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포크와 컨트리, 그리고 록을 동시에 균형 있게 잘 보여주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서 다음 앨범엔 그 균형을 어떻게 잘 잡느냐에 신경을 많이 쓸 듯합니다. 인간 박소은의 계획은 긴장을 좀 풀고 한 템포 쉬어가고 싶어요. 저는 음악에 있어서 정말 열정적인 편이라 인생의 초점이 '음악'에 맞춰져 있거든요. 그것도 좋지만 올해와 내년은 음악이 없는 시간엔 편히 릴렉스 했으면 좋겠어요. 저의 가장 크고 장기적인 목표는 '오래오래 좋은 음악하기.'이거든요.
그 외에는 책을 쓰고 싶어요. 제 삶과 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몇 권 내고 싶고 다른 목표는 제 후배 뮤지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뮤지션이 되는 거요. 아직은 제가 여러모로 힘도 능력도 안 되어서 누굴 도와주기가 빠듯하지만 5년 10년이 지난 뒤에는 여러 방면으로 힘들어하는 후배, 동료 뮤지션에게 선뜻 손을 내밀어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