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공방 – 이제는 단단해진 일상의 힘
반복은 사람을 무디게 만든다. 인간의 얄팍함이 싫어지는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천상의 맛을 느꼈던 음식도, 이 순간이 영원하기만을 바랐던 순수한 사랑의 감정도 반복되는 생활 속에 어느새 일상으로 둔해진다. 매일을 꼼꼼히 살펴보고 곱게 노래하는 음악가는 그래서 소중하다. 그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반복 사이사이 스며든 숨은 의미와 변화에 애써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때로는 기쁘기도, 때로는 슬프기도 한 그 작은 순간들은 그 빛을 통해 고유한 생명력을 얻는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순간들이 서로를 의식해 만든 새로운 힘은 우리의 삶이 앞으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된다. 2016년 첫 싱글 발표 후 7년. 우리가 놓친 일상을 여전히 섬세하게 노래하고 있는 듀오 새벽공방이 이번에는 본격적인 여름 송 ‘Palm Tree’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제 그룹을 넘어선 친자매 같다는 두 사람과 늦여름,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ㅣ 사진. 지운 @hereiscloudlandㅣ 편집. 오상훈
새 노래 ‘Palm Tree’는 새벽공방 최초의 본격 여름 노래잖아요. 도전해보게 된 배경이나 특별한 작업 과정이 있었을까요?
희연: 처음 이 곡 작업을 시작할 때는 팝스러운 멜로디 결의 곡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영어 가사로 데모를 만들어 놓고 묵혀두다가 여름 시즌에 어울릴 것 같아서 꺼낸 곡인데, 마침 ‘Palm tree’라는 어감도 귀엽고 여름 느낌도 나는 키워드가 생각났어요. 막연하게 제목만 덩그러니 지어 놓은 상태에서 여운이와 작사 작업을 같이하게 됐고, 마음에 드는 가사가 술술 나와서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던 기억이 나요.
여운: 2년 전 여름에 공연을 가던 길에 희연이가 요즘 꽂힌 단어가 있다며 ‘Palm tree’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어감이 청량하고 톡톡 튀어서 언젠가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가사를 제목에서 시작해 만들어 써내려 가면서 여름과 야자수, 여행 등 어울리는 키워드를 쭉 나열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아무래도 시원하고 귀에 박히는 단어가 필요하다 보니 평소 쓰는 가사 스타일보다는 더 많은 영어가 들어가기도 했고, 여러 가지 색깔에 대한 언급도 많았던 것 같아요.
얼마 전 새 싱글과 같은 이름의 단독 공연을 열기도 했어요. 여름 무드로 꾸며진 무대가 산뜻하게 느껴졌는데요, 공연 후기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나눠주세요.
희연: 관객분들이 소리를 낼 수 있는 단독공연이 무려 2년 반 만이에요. 보통 공연 초반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마련인데, 이번 공연에서는 시작부터 엄청난 환호 소리가 들려서 마음이 벅찼어요. 공연 후 사인회를 통해 그동안 보고 싶었던 마음도 전하고, 새로운 팬 분들도 만나서 너무 반가웠던 기억이 나요.
여운: 여름 느낌을 많이 내고 싶어서 튜브, 야자수, 풀잎 가랜드 등의 소품으로 무대를 직접 꾸몄는데요! 저희 둘 다 뭔가를 착각했는지 70cm로 상상했던 서프보드가 15cm 정도의 미니 사이즈로 도착해서 롤링홀 스태프분들이 급하게 공연장 소유 소품으로 더 멋지게 꾸며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롤링홀!
길었던 코로나19 시국 이후 오프라인 공연이 조금씩 재개되고 있어요. 새벽공방도 한동안 관객들을 직접 만나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코로나는 두 분에게 어떤 시간이었고, 또 그 기나긴 터널 끝에 다시 만난 일상은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있나요.
새벽공방: 공연을 못 해서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기도 했고, 코로나19로 인해 변화가 생겨 궁극적인 음악 활동에 대한 고민도 꽤 깊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올해부터는 분위기가 바뀌어 관객분들도 만날 수 있게 되고, 다시 열심히 달리고 싶은 의욕도 생겨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시선이 새벽공방 음악의 강점입니다. 혹시 최근 가장 예민하게 촉을 세우고 있는 일상의 순간이나 요소들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희연: 저는 주로 눈에 보이는 일상보다는 일상에서 느끼는 아주 사소한 감정에 영감을 받는데요. 요, 근래 곡들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소원해지는 감정과 영원에 대한 환상이 곡의 감정선이 될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또 최근에는 지나간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이 돌이켜 보면 좋은 추억이 되는 걸 크게 느끼기도 했어요. 추억 여행을 자주 해서 그런지 몰라도, ‘어쩌면 인생의 모든 순간은 추억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하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이런 생각을 곡에 담고 싶어요.
여운: 희연이의 답변을 듣고 신기했던 점이 있는데, 최근에 저는 눈에 보이는 일상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아주 당연하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에 반복되는 무언가나 매일 쓰는 단어가 문득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험 등의 더 직설적이고 솔직한 이야기에 대해 곡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하는 요즘이에요, 그렇다면 저희가 각자 만드는 새벽공방의 신곡들은 더 다채롭겠네요!
2016년 ‘우산 속 우리’로 데뷔한 후 벌서 7년 차 그룹이 되었습니다. 동갑인 두 사람은 내년 만 서른을 앞두고 있기도 한데요, 새벽공방으로 활동한 지난 시간과 두 사람의 20대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희연: 저의 20대를 돌아보니 용기 있게 많은 도전들을 해 온 것 같아 스스로 박수 쳐주고 싶어요. 꿈과 현실의 기로에서 결국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었고,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니 조금씩 성장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과정들을 든든한 동료이자 친구인 여운이와 함께 해서, 많은 순간이 더 재미있고 신나게 느껴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여운: 여전히 마음만은 아직도 스무 살에 머무르는 제가 철없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듯 해요. 어느 쪽도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재미있게 사는 것 같고요!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새벽공방으로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합니다. 최근에 희연이가 저에게 “넌 이제 정말 내 친자매 같아”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 한마디로 우리가 정말 잘 지내왔고 앞으로도 같이 재미있게 음악을 할 수 있겠다고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10년 뒤 새벽공방을 상상해 봅시다. 팀으로서, 또 개인으로서 10년 뒤 새벽공방과 두 사람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요?
새벽공방: 10년 뒤 저와 새벽공방은 여전하면서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딘가 단단하고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종종 휘청거릴 때가 많지만, 10년 전의 저와 비교하면 많이 단단해진 걸 느끼거든요. 무언가에 쫓기고 불안한 일상이 아닌, 매 순간 내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유가 있는 멋진 뮤지션의 삶을 살고 있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