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발매한 키라라4 Live 일렉트로닉 뮤직 라이브 앨범
일렉트로닉 뮤직에서 라이브 앨범이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때 세계적인 DJ들의 라이브가 진짜냐, 가짜냐 하는 논쟁이 있었다. 쉽게 말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믹스된 음악을 담은 USB를 미리 꽂고 뭔가 하는 척하는 이들의 라이브가 진정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음악가 키라라가 한국 음악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라이브 앨범을 지난해 11월 내놨다. 정규 4집 ‘4’에 조응하는 실황 음반 ‘4 Live’다. 스스로 자신의 라이브 플레이가 디제잉이라 불리는 것 자체를 경멸하는 키라라가 진짜 ‘날것의 라이브’를 건져 올려 음원으로 영원히 박제했다. 세계로 눈을 돌려봐도 다프트 펑크의 ‘Alive’ 앨범들이나 크라프트베르크의 몇몇 음반 따위가 유례로 떠오를 뿐이다.
‘전자음악은 잘 몰라’ 하는 손사래는 키라라의 음악 앞에 소용 없다. 직관적으로 쏟아지는 비트와 멜로디의 향연은 키라라를 알든 모르든 고막을 거쳐 뇌로 밀려든다. 귀를 맡기면 귀가, 몸을 맡기면 몸이 그냥 흔들리는 음악이다. ‘전자음악, 내가 잘 알지’의 너스레마저 무색케 하는, 이것은 가차 없는 음악이다. 키라라와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임희윤 ㅣ 사진. 지운 @hereiscloudlandㅣ 편집. 오상훈
- 키라라라는 아티스트명은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에요. 혹시 애초에 어떤 의미로 지었는지, 지금 새로 갖게 된 의미나 느낌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맥락이 있지만, 지금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은, 첫째로 일본이름이고 싶었다는 것이고, 둘째로 발음이 쉬운 말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음악에서 받은 영향을 이름에 남기고 싶었고, 키라라 이전에 사용하던 예명이 너무 길고 거창해서 반대의 간결함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이름에 관한 질문을 항상 들으니, 이번 인터뷰에서 최초로 드디어 그 인물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은데, 키라라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는 일본의 포르노 배우 키라라 아스카가 그렇게 훗날 유명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키라라는 AV 업계 원탑이고, 한국의 키라라는 성 문제로 골치가 아픈 트랜스젠더라는 아이러니가 우습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 '이쁘고 강한 음악'이 캐치프레이즈예요. 혹시 키라라 음악의 발전 역사를 돌아볼 때, 이제 '이쁨'과 '강함' 이외에 하나 더 추가할 만한 키워드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이쁘고 강한 음악’을 언제까지 캐치프레이즈로 삼아야 할지는 현재 심각하게 재고 중입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스스로를 이쁘다고 말하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 계층이 있고, 저는 그들로부터 저를 지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는 참 이쁘고 싶었고 강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다 무엇인가 싶습니다. 나라는 사람에게 이쁜 것이 어울리기나 한지, 강한게 어울리기나 한지, 그동안 너무 많은 말들로 저를 수식해왔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그냥 키라라 하고 싶습니다. ‘이쁨’과 ‘강함’의 역사를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싶고, 물론 다른 수식어를 더 추가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저에게 제가 너무 없어서 ‘이쁘다’ 라던지 ‘강하다’ 하는 말로 저를 설명하려 애쓰고 싶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키라라로 우뚝 서고 싶습니다.
- 지난해 4집을 내고 올해는 라이브 앨범까지 발매했어요. 라이브 앨범을 내는 것이 전자음악계에서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프트 펑크의 'Alive' 앨범들도 생각나네요. 라이브 앨범을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말씀해주신 다프트펑크의 ‘Alive’ 앨범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는 저스티스의 라이브앨범 때문일 수도 있고, 소울왁스, 케미컬브라더스의 라이브앨범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라이브앨범을 냈기에,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은 저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한국에서 전자음악으로 라이브앨범을 만드는 일이, 저라서 가능한 일이라는 점이 동기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스튜디오 제작에 임할 때, 그리고 라이브 콘서트에 임할 때 키라라의 마음가짐은, 또 장비나 스킬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는지요.
키라라가 사용하는 DAW인 Live는 두 가지 형태로 작업창의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편의상 그것을 여기서 가로창, 세로창이라고 부르자면, 저는 공연할 때는 세로 창만 쓰고, 음악을 만들 때는 가로 창만 씁니다. 이렇게 용도에 따른 유연한 사용이 특징인 DAW인 에이블톤 사의 Live는 음악 창작과 공연을 양쪽 모두를 위한 최고의 도구이며 키라라의 영원한 친구입니다.
음악을 만들 때와 공연을 할 때의 마음가짐은 사실 너무도 같아서 분리해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둘 다 열심히 가열차게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한 만큼 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 최근 대만 공연을 하고 유럽 투어에 나선 것으로 압니다. 해외 활동을 하면서 국내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혹시 투어 중에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공연장에서 만나는 프로덕션 팀들에게서 현저히 큰 차이가 느껴집니다.
유럽의 스탭들은 행복하게 일하고 일을 잘합니다.
한국의 스탭들은 불행하게 일하고 일을 잘합니다.
행복하게 일하고 일을 못 하는 나라도 있는데 차마 여기서 얘기는 못 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실감하는 것이 재밌는 에피소드들로 기억이 남네요.
-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리믹스하는 작업을 많이 해왔지요? 아직 착수해 보지는 않았지만 늘 염두에 두는, 이 아티스트만큼은 꼭 리믹스해보고 싶다 하는 꿈의 아티스트가 있다면? 또, 키라라가 가장 즐겨 듣는 '환상의 유명곡 리믹스' 버전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우선 저는 Soulwax의 리믹스 작업들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제 귀에 잘 맞습니다. 그것들만 들으면 무릎을 탁 치게 되고 유쾌한 기분입니다. 자꾸 인터뷰어님께 허무한 답을 드리게 되어 민망하지만, 리믹스 작업을 더 이상 애써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약 제가 A라는 음악가의 B라는 곡을 리믹스 하면, 사람들은 그 음악을 ‘키라라의 B’라고 칭하곤 했습니다. 제가 A에게서 음악을 빼앗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 그 기분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아서, 리믹스 작업을 점차 줄여나가고자 합니다. 이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메탈 음악을 리믹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입금이 있다면 좋은 외주로써 리믹스 작업을 열심히 응할 의향이 있습니다.
- '오디오비주얼 라이브'도 계속해 선보이고 있죠? 키라라가 생각하는 좋은 '오디오-비주얼'이란 어떤 것인가요? 어떤 철학, 미학, 또는 자세로 '오디오-비주얼'을 작업하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여러 인터뷰에서 많이 얘기했듯이, ’텍스쳐는 재미없다‘ 가 저의 철학입니다. 화면에 무엇이 뿌려져 있는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 그것이 나오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멋있는 이미지가 아니어도, 단지 점선면으로도, 그것이 언제 무슨 소리에 맞춰 튀어나오는지만 성실하게 결정해도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멋있는 이미지를 만들 자신이 없으니 이런 요령이 생겼나 봅니다.
- 키라라의 2023년은 어떨까요. 장단기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 장기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꿈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단기적인 목표
- 키라라의 ’그냥 하는 단독공연‘ 기획을 ’그냥 하는 페스티벌‘로 크게 만들고 싶습니다.
- 키라라 10주년 때 박스 셋을 내고 싶습니다. (잘 안 팔릴 것이라서 사장님이 반대하실 수도 있습니다.)
- 한국대중음악상의 종합분야의 상을 타고 싶습니다.
- 키라라의 레슨을 책, 동영상 등의 유형 가치로 남기고 싶습니다.
장기적인 목표
- 음악 재밌게 오래 하고 싶습니다.
- 저의 성정체성에서 비롯한 해로운 피해 의식들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키라라's' 덕밍아웃*
사실 덕질에 조예가 깊지 않다. 자아가 너무 비대해서 다른 것을 사랑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나마 내가 좋아했던 것을 꼽으라면 포켓몬스터 정도가 생각이 난다. 보는 만화도 오직 포켓몬스터, 하는 게임도 오직 포켓몬스터다. 주제가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걸 너도 원하는' 세상이 유토피아라고 생각한다. 포켓몬 세상에 살고 싶다.
*'키라라's' 띵곡*
1. Ryuichi Sakamoto - Energy Flow
지난 날을 반추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이다. 류이치 사카모토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셨으면 좋겠다.
2. 이소라 - 나 Focus
앞으로의 날들을 다짐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이다. 이소라 8집을 너무 좋아한다. 이 앨범과 함께라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