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거슬러
노래, 그 자체의 힘으로
우직하게 솟구치는
‘역주행’.
언제부터인지 가요계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 거꾸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은 연어만이 아니다.
어쩌면 차트 역주행이란 개념은 종전의 차트가 갖고 있던 클리셰 때문에 탄생한 것 아닐까. 인기 가수가 신곡을 내면 팬덤의 화력이나 화제성으로 그 노래가 ‘톱’을 찍은 뒤 시간이 갈수록 중력에 이끌리듯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다반사이니까.
그러나 인기 가수나 ‘팬덤 대장’이 아닌 가수의 좋은 노래는 가끔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간이 지나면 빛을 바래게 하는 차트의 중력을 거슬러 노래, 그 자체의 힘으로 우직하게 솟구친다.
2021년 말 발표된 범진의 ‘인사’도 그러하다. 최근 멜론 인디음악 차트 1위로 역주행하더니 지니뮤직 10대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삶이나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고 그 청각적 생채기로 되레 듣는 이를 위로하는 그의 노래는 어디서 길어올려진 것일까.
‘난 괜찮아(I Will Sur vive)’ ‘가니’로 세기말 가요계를 풍미한 진주의 친동생이기도 한 범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글: 임희윤
사진: JMG (로칼하이레코즈, 더블엑스엔터테인먼트)
편집: 곽대건
- 2021년 발표한 ‘인사’라는 곡이 역주행해서 인디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대단한 성과인데 소감이 어떤가요. ‘인사’의 곡 소개 글을 보니 명예퇴직하신 부친을 보면서 만든 곡이라고 돼 있더라고요.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작 과정도요.
우선 이렇게 된 게 믿기지가 않고 감사할 뿐입니다. 사실 역주행의 기미가 보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웃음) 근데 그럴 때마다 ‘이번엔 진짜인가?’라는 생각과 기대가 들었다가 내심 실망했었던 기억이 있어서 솔직히 이번 경우도 또 한 번 꿈틀하는구나 라고만 가볍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그 ‘꿈틀’이 실제로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진 것에 대해 정말 감격스럽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시는 것에 대해 매일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인사’라는 곡을 제가 처음 구상할 때, 저희 아버지가 가족들을 위해 일하시고 퇴직하실 당시의 그 쓸쓸한 모습을 보고 ‘돌아서는 너를 보며’라는 가사가 문득 떠올랐어요. 그 한 문장에 유독 꽂혀서 작업실에서 기타를 튕기다 보니 어느새 곡이 완성이 되어있더라고요. (웃음)
- 범진이란 활동명은 성을 뺀 이름으로 알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때 활동명 정하기 위한 고민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범진이라는, 어찌 보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이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범진이란 이름이 주는 뉘앙스나 뒤늦게 부여하게 된 의미도 혹시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처음엔 제이비, 제비, 등등 많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이렇게 영어로 짓거나 조금 영(young)하게 지을 시엔 제가 음악 활동을 하면서 경력을 쌓아 나갔을 때, 즉 ‘미래에 제 모습과 어울릴까’라는 고민을 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아티스트의 이름에서 오는 이미지가 분명 있다고 느끼거든요.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에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좋을 이름을 하라고 진주 누나가 조언을 해줘서 성을 뺀 범진으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 가수 진주 씨의 친동생이지요? 진주 씨 하면 대단한 가창력의 소유자로 아직도 많이 회자되는데요. 선배 가수로서 진주, 누나로서 진주가 범진 씨에게 가르쳐 주거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진주 씨에 대해 가수로서 가장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부분, 가장 좋아하는 곡도 궁금합니다.
진주선배님…(웃음) 아니 진주 누나의 ‘가니’라는 곡을 좋아하고 누나랑 대화할 때는 항상 음악적인 피드백보다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주제를 많이 다루는 것 같아요.
음악이라는 분야는 어찌 됐건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이기 때문에 그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먼저 갖춰야 한다 등등… 조금은 철학적이죠? 그래서 저 또한 진주 누나에게 영향을 받아서 항상 어떤 ‘아티스트’보단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 항상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진주 누나는 언제나 제게 말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웃음).
- 허스키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에요. 일종의 가족력? 타고난 음성인가요? 아니면, 갈고 닦은 결과물인가요. 허스키 보이스 중에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정반대의 맑은 보이스의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그 이유들도 궁금해요.
이게 갈고닦기보다는 점점 익어갔던 것 같아요. 목소리가 허스키한 편이기도 한데 대중들이 좋아해 주는 톤을 찾아가다 보니 최대한 이 허스키한 톤을 살려보는 방향으로 노래하다가 원래 제 목소리였던 것처럼 자연스러워졌어요. 허스키 보이스 가수라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정말 자주 듣고 동경했었던 분이 계신데 조장혁 선배님…. 정말 많이 들었었어요 듣자마자 ‘이게 남자의 음성이구나!’라는 걸 느낄 정도로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맑은 보이스라면 아무래도 제가 제일 닮고 싶은 ‘에드 시런’ 같아요. 음악적인 색채부터 시작해서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성까지 정말 모든 면에서 완성형에 가깝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 곡을 쓸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범진 씨의 곡들을 들어보면, 결코 어렵지 않은 구성이나 진행을 사용하지만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무엇인가를 설계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처음 음악을 시작하여 곡을 쓸 땐 저만의 이야기를 어려운 방식으로 풀어냈다면, 현재는 조금 더 대중들에게 가까운 멜로디와 가사를 신경 쓰고 음악적으로 좋은 사운드를 구성해 내려고 노력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불특정 다수의 타인들에게 저의 소리를 들려주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이들이 듣고 좋다고 느낄만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거든요.
- 스스로를 인디 음악가로 생각하나요, 아니면 메이저 가수로 생각하나요? 둘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진 요즘입니다만 자신의 정체성이나 음악 제작에 대한 태도 같은 것들을 돌아보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스스로 입지에 관해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메이저 가수, 인디 가수라고 구분 짓기보다는 ‘대중에게 친근한 가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제 정체성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버리게 되면 저 자신이 그렇게 행동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길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마치 당장 대중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섞여들어갈 수 있을 만한 친근한 가수라고 스스로 생각해요. 집 근처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무대에 있는 그런 가수요!
- 범진의 롤 모델은? 앞으로 이런 가수가 되고 싶다, 작곡가가 되고 싶다 하는 이상적인 방향이 궁금합니다. 아울러 가수로서 롤 모델, 작곡가로서 롤 모델뿐 아니라 넓게 음악가, 엔터테이너 또는 예술가로서 지향하는 모델이 있다면 어떤 모습인지도 궁금합니다.
예전에도 그랬었고 지금도 저는 항상 롤 모델 얘기가 나올 때 꼭 언급하는 아티스트가 있어요 ‘에드 시런’이라는 글로벌 아티스트인데요. 정말 앨범들을 들을 때마다 느껴요.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탑 라인을 쓰는 걸까? 이렇게 파격적이지만 대중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곡은 어떻게 쓰는 걸까?라는 감탄과 의문이 계속 느껴져요.
그렇다고 해서 이 분이 엔터테이닝을 못하는 가수가 아니잖아요. 꽉 찬 육각형의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곡에도, 어떤 예술의 형태라도 마치 원래 그 분야를 했던 것처럼 녹아들어 가는 그런 사람이요.
- 올해와 내년의 계획, 또 장기적인 목표와 꿈에 관해 들려주세요.
일단 단기적인 목표는 제 첫 정규앨범이에요. 아무래도 처음인지라 정말 멋있게 발매하고 싶어요. 그래서 ‘범진이라는 아티스트는 정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음악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대중분들이 가질 수 있게끔 만들고 싶어요. 추가적으로 저는 제 음악을 사랑해 주시고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위해 같이 얼굴을 맞대며 직접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오프라인 공연도 계속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제 노래로 위로와 행복을 줄 수 있는 가수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